[법제 2월호] 입법과 법의 발견

입법과 법의 발견

 

 

 

이익현(법제처 법령해석정보국장)

 


   소위 '택시법'에 대한 찬반 논의와 거부권 행사로 사회가 한동안 시끄러웠다. '택시법' 외에도 비슷한 논쟁은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진행 중인 법률안 뿐 아니라 공포된 법률에 대한 논쟁도 끊이지 않는다.  입법에 대한 관심과 의견 표명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공포된 법률에 대한 지나친 논쟁은 법의 권위를 실추시킬 수 있다. 국민이 뽑은 대표자들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만든 법에 대한 논란이 왜 끊이지 않는 것인가.
   법은 내 의사와 관계없이 준수해야 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다. 민주국가에서 입법자는 궁극적으로는 국민이다. 얼핏 생각하면 입법이 먼저이고 그 결과가 법이므로 법이 나중일 것 같지만, 역사적으로는 법이 먼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준수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주어진 것, 정의와 공익을 위한 고차원의 원리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된 것 등으로 인식되었다. 필요에 따라 법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역사적으로 한참 후의 일이었다고 한다. 입법은 인간이 필요에 의해 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필요에 의해서 만든 것이지만 일단 입법이 되고 나면 모든 사람을 구속하고 국가의 물리력을 통해 강제할 수 있기 때문에 엄청난 영향력을 갖게 된다. 어떤 이는 인간의 발명품 중 불과 화약보다 더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근대 역사는 상당 부분 입법권을 국민의 수중으로 가져오기 위한 투쟁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닐 것이다.
   필요에 따라 입법을 할 수 있다는 사고는 자칫하면 법은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 법은 언제든지 필요하면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 해결이나 국가 정책을 위해 필요한 입법을 하고 입법권자는 광범위한 재량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법은 입법자가 필요한 내용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적합한 법을 발견하는 것일까?
   우리 헌법은 국회에 입법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엄격하고 복잡한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법률안의 제안은 정부와 국회로 이원화시키고 있으며, 대통령에게는 공포권과 거부권을 주고 있다. 법률 외에도 대통령령, 총리령 및 부령 등의 규범 형식을 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복잡한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이유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함으로써 폭력적 형태로 표출될 수 있는 사회적 힘을 순화하고 제도 안으로 통합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입법과정은 다양한 요구사항을 단순히 집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다 높은 차원의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법이 다수자나 우월한 힘을 가진 자의 명령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차원 높은 가치를 포함할 때 권위를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입법과정은 주어진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대안을 발견하는 과정이어야 하고, 따라서 입법은 법을 발견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은 전체적으로 체계를 이루고 있다. 개별적 입법은 그때그때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나 어느 한 시점의 전체 법질서는 다양한 규범들이 혼재된 체계로 파악할 수 있다. 인간사회라면 어디에나 적용되는 보편적 규범, 오랜 세월 고민을 통해 확립된 규범, 경험과 지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규칙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새로운 입법은 기존 법체계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주게 된다. 우리와 다른 법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의 Rosco Pound가 새로운 입법을 기존 법질서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에 대해 했던 고민은 전체 법질서가 지닌 체계성을 고려한 데 따른 것이다. 이와 같이 기존 법질서를 하나의 체계로 이해한다면, 새로운 입법을 고려할 때는 전체 법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채택할 수 있는 수단의 한계와 대안의 범위에 대한 세심한 탐구가 필요하다. 입법과정은 주어진 여건에 가장 적합한 대안을 발견하는 과정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벨기에의 법학자 Wintgens는 입법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발달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주권사상을 들고 있다. 주권자가 결정하는 것이 곧 법이 되고, 주권자의 의지는 수시로 변하므로 학문적 연구에 적합하지 않고, 따라서 법학은 입법 후 해석 문제로 제한되고 입법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포기하였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그는 완전한 법학이 되기 위해서는 입법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국가에서 입법의 주체가 주권자인 국민이라는 점은 당연하지만 입법권의 행사는 최적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행사되어야 하고, 당연히 학문적 도움도 필요하다. 미국 연방 대법원의 Breyer 대법관은 실증적 분석을 통한 규제법의 개선방안을 제시하고 사법심사에서도 전문가의 활용을 강조한다. 입법의 영향력이 중요할수록, 사회가 복잡하고 전문화될수록 입법은 조직화된 집단이나 다수자에 의한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참여를 통한 최선의 대안 발견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될 때 법에 대한 수용도와 신뢰가 높아질 것이다.

 

법제시론.pdf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법제처 블로그지기 새령이
더 많은 관련글 보기
이 글에 대한 의견을 남겨 주세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