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상 신뢰보호원칙의 구현

 

입법상 신뢰보호원칙의 구현 (5월호)

임병수(전 법제처 차장)

행정법상의 신뢰보호원칙이란 행정기관의 어떤 언동의 정당성 또는 존속성에 대한 개인의 보호가치 있는 신뢰를 보호하여 주는 원칙을 말한다. 

영미행정법상의 이른바 금반언의 법리도 신뢰보호와 대체로 같은 것으로서 가령 갑이 행한 표시를 을이 신뢰한 경우에는 갑은 스스로의 종전의 표시와 모순되는 태도를 취하여 을에 대하여 손실을 가하여서는 안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이 국민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을 정하는 행정법령이 범람하는 시대에 있어서는 그 내용의 복잡다기성에 개폐의 빈번함까지 더하게 되어 일반국민은 행정법령의 내용 이해뿐만 아니라 이러한 내용의 행정법령이 과연 언제까지 존속할 것인지도 예측해야 하는 이중, 삼중고를 치르고 있다.

법적 안정성의 요청과 정의의 요청은 충돌될 수 있다. 순수한 정의의 요청은 법적 안정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정의롭지 못한 상태의 제거를 요구하지만 법적 안정성의 요청은 때로 정의롭지 못한 상태라 할지라도 안정성을 위해 그대로 유지될 것을 요청한다.

또한 오늘날처럼 국내외적 정치, 경제환경, 사회적 상황 등이 빠른 속도의 변화를 보이고 있는 시기에는 그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 안정성의 확보에 못지않게 중요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법적 안정성은 정의의 요청 및 새로운 변화와의 조화를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지가 문제된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침해적인 영역, 특히 법위반행위에 대한 제재나 벌에 있어서는 행위시법주의에 따라 소급입법이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있어 이러한 문제가 덜하나 계속 중인 법률관계 즉, 과거에 시작되었으나 현재 진행 중인(아직 완성되지 않은) 법률관계나 사실관계에 대하여는 소급적용이 원칙적으로 허용된다고 하는 이른바 부진정 소급입법 이론으로 인해 이러한 영역에서의 국민 불편은 상존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다.

우리 행정절차법(제4조 제2항)에서는 행정청은 법령 등의 해석 또는 행정청의 관행이 일반적으로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진 때에는 공익 또는 제3자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해석 또는 관행에 의하여 소급하여 불리하게 처리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여 이른바 신뢰보호의 원칙을 명문화하고는 있으나 입법영역에 있어서 이른바 부진정 소급입법으로 인한 법적 안정성 침해 문제해결에 있어서는 직접적인 해결근거로서 많이 활용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입법영역에서의 신뢰보호원칙의 구현을 위해서는 입법 심사를 담당하는 특히 법제처의 역할이 실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계속 중인 법률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리 이론상 사후 입법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개별 법령의 심사 특히 개정 법령의 심사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신뢰보호원칙 구현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미션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하게 될 경우에는 법령 공포·시행 후 끊임없는 해석·적용상 혼란과 행정상 쟁송으로 국민의 불편을 가중하게 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입법상 신뢰보호원칙을 잘 구현하느냐 여부는 법령안의 부칙 상 경과조치, 특례, 적용례등에 관한 입법기술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구사하느냐에 달려 있다(원래 적용례는 개정법령의 적용시점을 명확하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지만 규정방식에 따라서는 실질적으로는 경과조치적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게 되므로 광의적 의미에서 경과조치와 같이 언급하였다).

계속 중인 법률관계에 대한 사후입법(예: 재직 중인 공무원에 대한 개정 연금제도 적용, 기존 영업자에 대한 준수의무 추가부과, 기존 건축물에 대한 개정 소방기준 적용 등)에 있어서는 기존의 법률관계에 대한 신법, 구법 적용여부를 조문별로 검토함에 있어서는 공익목적 달성을 위한 행정상 필요가 급하고 크지 않는 경우에는 가급적 구법상의 법률관계를 존중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정 법령을 적용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도 개정 법령의 시행유예기간 부여를 통해 입법충격 완화 및 적응기간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신제도로의 이행이 공익상 필요한 경우에도 단계적으로 기간의 경과에 따라 점진적으로 개정법 질서로 포섭해 나가는 단계적 경과조치규정을 두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시장에 있는 많은 국민과 기업은 실무공무원 개인의 자의적이고 독단적인 법령해석이나 적용에도 타격을 받지만, 경과조치 하나 없는 개정법령(이른바 무심한 법령)이 출현할 경우에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충격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는 점을 입법심사담당 공무원들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신뢰보호원칙이 행정법상의 원칙으로 자리 잡고 규범화되기 전부터 법제처는 경과조치규정 등을 통해 입법상 신뢰보호원칙 구현을 위해 엄청나고 중요한 기여를 해 왔다고 감히 자부한다.

이러한 좋은 전통을 계승·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도 법령안 본칙 조문심사가 끝난 다음에는 조문별로 경과조치규정 필요여부를 꼼꼼히 따짐으로써 국민의 편에서 보호가치 있는 신뢰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신뢰보호원칙의 전사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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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제처 블로그지기 새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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