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입법영향평가제도의 도입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3월호>


 

김기표(경기대 교수, 전 한국법제연구원장)


올해 4월의 국회의원 선거와 12월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각종 선심성 입법과 법리에 맞지 않는 무리한 입법을 남발하여 국민의 비판과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받고 있다. 최근의 예만 보더라도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에 예금보호한도를 넘는 예금을 하여 피해를 본 고객에게 국민의 돈으로 보상을 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저축은행 피해자지원 특별법안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법안은 예금자보호 입법의 기본질서를 흩트리는 것으로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면 매번 국민 전체의 부담으로 일부 사람의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다. 입법의 기본원칙을 무시한 이러한 입법들이 특히 선거철 때 마다 부지기수로 발의되고 그 중 상당수는 국회를 통과하여 시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법은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국가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법은 개인과 공공의 이익을 비교형량하여 제정되어야 하며, 사회전체 차원에서 서로 충돌하는 가치와 이익을 균형 있게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입법현실을 보면, 사회의 전문화와 다양화에 대응하여 국민생활에 대한 규제가 늘어나고 이에 따른 입법수요의 증가로 사회전반에 걸쳐 수많은 입법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결과 입법의 홍수 또는 과잉입법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지나친 규제입법, 이익단체 등의 편파적 입장을 대변하는 선심입법, 국민생활을 불편하게 하고 기업활동을 저해하는 입법이 늘어나 서로 충돌하는 가치와 이익을 조정해야 하는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국가의 예산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선심성 입법으로 인하여 국가에 과도한 재정적 부담을 초래하는 경우도 많이 있고, 입법이 원래 의도한 효과를 달성하지 못하고 입법자가 당초 예상하지 못한 결과나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처럼 과잉입법과 졸속입법 때문에 법령의 효과성과 수용성이 떨어져 입법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위기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입법환경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효율적인 입법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제 우리나라도 유럽 각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입법영향평가제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추진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입법영향평가제도는 입법과정에서 입법이 국민이나 사회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과 비용을 비롯하여 법령의 실효성과 부작용 등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분석하는 시스템으로서 입법의 효율성 및 공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이다. 입법영향평가는 법의 효과성의 관점을 중시하는 법사회학, 비용과 편익의 관점을 중시하는 법경제학 등의 기법을 활용하여 입법의 효과에 관하여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을 함으로써 입법의 민주성과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입법자는 입법영향평가를 통하여 사회집단의 다양한 의사를 파악할 수 있으므로 입법의 민주성과 정당성을 확보하여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독일·프랑스·스위스 등 유럽 각국에서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입법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다. 입법영향평가제도가 도입된 중요한 이유는 과도한 입법과 불필요한 규제를 예방하고 억제하여 보다 나은 법(better law)과 보다 적은 규제(less regulation)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현재 규제영향분석, 법안비용추계, 성별영향평가, 부패영향평가 등의 입법과 관련된 평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들 평가제도는 입법과정에서 입법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평가함으로써 정책의 효율성과 법령의 품질을 높이는데 기여를 하고 입법영향평가에 해당하는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해 온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들 각종 평가제도는 특정한 분야에 국한된 평가로서 종합적인 체계를 고려하지 않고 소관부처별로 독자적으로 수행하여 왔기 때문에 평가기준이나 평가기법이 체계화되어 있지 못하고, 입법의 필요성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입법이 미치는 다양한 영향에 대한 종합적 평가가 되지 못하여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평가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평가요소가 중복되거나 평가 상호간의 관계가 불명확하여 연계성이 떨어지고, 정부입법과정을 복잡하게 만들어 정책의 법제화에 소요되는 기간을 장기화하며, 주무부처의 입법에 따른 부담과 평가에 따른 비용을 증가시키고, 평가기준과 평가기법의 개발 등이 소관 부처별로 별도로 추진되어 평가의 객관성과 통일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리도 좋은 법을 만들기 위한 방안으로 현행 입법관련 평가제도를 포괄한 체계적인 입법영향평가제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세계무대에서 국가차원의 경쟁을 하는데 있어 입법의 효율성과 공정성이 국가경쟁력의 척도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인 입법영향평가제도의 도입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국가전체차원에서 효율적인 입법영향평가제도의 틀을 만들기 위하여 기존에 시행중인 여러가지 입법관련 평가제도를 하나의 종합적인 입법영향평가제도의 틀에 통합함으로써 우리나라 입법과정 전반을 체계적으로 정비하여 정책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법제화를 지원해야 할 것이다. 입법영향평가제도의 성공적인 도입을 위해서는 전문인력의 양성과 전담조직의 확보, 전문연구기관의 육성, 예산의 확보, 과학적인 평가기준 및 평가방법의 개발, 평가제도 도입에 따른 입법지연 방지를 위한 입법과정의 정비, 관련법령과 평가기법 등에 대한 통계자료와 기초자료를 축적하여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마련등 제도 도입여건의 조성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입법영향평가제도를 시행할 수 있는 여건을 충분하게 조성하지 않고 이를 도입하는 경우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입법과정에 또 하나의 절차만 추가하여 입법을 지연시키고 입법비용만 추가되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입법영향평가제도의 본격적 도입은 우리나라의 입법과정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고 각 부처의 권한문제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입법과정의 전반적 개선문제와 함께 논의되어야 하며 행정부 내의 합의는 물론 국회와 일반국민의 사회적 합의와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입법영향평가제도가 도입되면 각 부처가 입법추진을 함에 있어 입법절차가 지연되고 입법영향평가를 총괄하는 기관의 간섭과 통제를 받게 되기 때문에 각 부처입장에서는 신속한 입법을 저해하는 제도로 인식할 것이므로 입법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하려면 그 필요성에 관하여 전 행정부 차원의 합의를 이끌어 내기위한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입법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하는 경우 그 추진주체는 정부입법정책을 총괄하는 법제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입법영향평가는 입법과정 전반에 걸쳐 진행되는 절차이기 때문에 정부입법정책을 총괄·조정하고 있는 법제처가 입법영향평가제도의 도입을 주도해야 할 것이다. 법제처가 수행하고 있는 법령심사업무, 법령해석업무와 법령정비업무도 입법영향평가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법제처가 입법영향평가의 주무부처로서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업무의 연계성도 살리면서 조직과 인력도 최소한으로 늘리는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할 것이다. 법제처가 주무부처가 되면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입장에서 입법영향평가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입법영향평가를 위한 별도의 기관을 설치하는데 따른 조직과 인력의 지나친 확대라는 부담을 덜 수 있다. 법제처가 입법영향평가의 주무부처로서 기능을 맡게 되면 사전평가에 해당하는 법령안 초안작성의 체계적 사전 입법지원, 병행평가에 해당하는 법령심사업무 그리고 사후평가에 해당하는 법령정비업무와 유권해석업무를 일관성 있게 연계하여 수행함으로서 제도운영의 통일성과 효율성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복지논쟁이 한창이다. 사회복지의 원조국가인 영국의 사회보장제도를 마련한 경제학자 비버리지(W. Beveridge)는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를 모토로 내세워 체계적인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여 정착시켰다. 이제 우리의 입법과정에도 요람(법령초안의 마련)에서 무덤(법령의 개폐)까지 입법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입법영향평가제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추진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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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제처 블로그지기 새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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