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호, 이달의 시론> 입법청원의 활성화

 

입법청원의 활성화

임병수(전 법제처 차장)


우리 헌법 제26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고, 청원법에서는 이러한 청원권행사의 절차와 청원의 처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청원법 제3조에서는 청원을 제출할 수 있는 기관을 ➀ 국가기관 ➁ 지방자치단체와 그 소속기관 ➂ 법령에 의하여 행정권한을 가지고 있거나 행정권한을 위임 또는 위탁받은 법인·단체 또는 그 기관이나 개인으로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4조에서는 청원사항을 ➀ 피해의 구제 ➁ 공무원의 위법·부당한 행위에 대한 시정이나 징계의 요구 ➂ 법률·명령·조례·규칙 등의 제정·개정 또는 폐지 ➃ 공공의 제도 또는 시설의 운영 ➄ 그 밖에 국가기관 등의 권한에 속하는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중에서 이른 바 입법청원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법률·명령·조례·규칙 등의 제정·개정 또는 폐지에 관한 청원을 의미하는 바 입법청원에 관하여 비교적 자세한 규정을 두고 있는 법은 국회법이다. 국회법 제9장(청원)에서는 청원서의 제출(의원의 소개 필요), 청원의 심사·보고 등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고 국회청원심사규칙(국회규칙)에서 청원심사에 관한 구체적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로 규정되어 있는 입법청원권의 구체적 보장을 위한 시스템이 국회 외의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지방의회 제외)에서는 제대로 활성화되어 있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입법부는 아니지만 정부도 법률안제출권을 가지고 있고 행정입법이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


민간부문에 와서 협회나 단체 특히 외국인으로부터 많이 받은 질문이 한국의 입법(규제)환경은 어떤가요? 였다. 입법과정이나 절차에 관해서 궁금해 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정작 그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에게 입법동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느냐하는 것이었다.

중앙부처 공무원을 대상으로 입법동기에 관한 리서치를 해봐야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그간의 공직경험에 비추어 보면 우리의 경우 정책담당 공무원(甲)이 입법을 할 것인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이른바 입법정책재량을 상당히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면 일반국민(乙)의 입장에서는 입법과정 상 상당히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될 수 밖에 없게 된다. 물론 제안된 법령안에 대하여 입법예고 과정에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사후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공무원에 의하여 제안된 법령안의 내용에 한정하여 의견을 제출하는 것이므로 입법청원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입법환경 하에서는 입법청원을 하더라도 진정서와 비슷한 민원으로 단순 처리될 가능성이 많아 이에 실망한 국민들이 입법청원을 활용하고 있지 않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면 정책담당공무원들이 입법청원서를 받았을 때 일반민원처리시스템에 의하지 않고 다소 심화된 검토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처리결과를 통보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 국회청원심사규칙(국회규칙)처럼 법제업무운영규정(대통령령)에 입법청원심사에 관한 절차와 방법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방안은 어떨까? ① 각 부처 차관이 주재하고 민간위원이 일정비율 참가하는 입법청원심사위원회를 자문기관으로 각 부처에 구성하는 방안 또는, ② 입법청원심사위원회를 국무총리자문기관으로 법제처에 두는 방안 등도 같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입법청원심사위원회는 강화되는 규제에 대한 심사를 담당하는 규제개혁위원회와는 달리 기존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규제완화위원회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법제처에서 그동안 추진해 온 국민불편법령개폐사업, 국민참여입법센터와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이나 다른 점은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인 청원권의 구체적 보장을 위한 제도라는 점에서 헌법을 직접 근거로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해괴(?)한 발상을 하게 된 것은 정책담당공무원에게 불합리하거나 불편한 법령의 개정을 건의하는 것 자체를 입법로비로 인식하여 기피하거나 이루어지더라도 음지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헌법상 기본권의 정당한 행사로 이해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이른바 청부입법으로 불리는 부실한 의원입법의 양산을 방지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입법청원제도가 활성화될 경우 국민불편 법령의 개정을 바라는 시장의 요구가 물밀듯이 몰려올 수도 있으나 이는 오히려 바람직한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며 법령체계의 정밀한 분석을 거쳐 만들어진 합리적인 입법청원서부터 우선 채택여부를 결정한다면 입법청원의 질도 차츰 향상되어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도 일부 조직화된 이익단체는 세밀하게 법령안을 만들어 부처에 비공식적으로 제출하는 방식으로 입법과정에 참여하고 있으나 덜 조직화된 이익단체나 국내에 신규로 투자 또는 진출하고자 하는 외국인이나 외국회사의 경우에는 정책담당기관에 접근하는 방법 자체를 모르고 낯설어 하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가 도입되어 실질적으로 운영될 경우에는 시장의 반응은 상당히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언젠가 입법청원의 제도화가 입법의 민주화·세계화방안의 일환으로 검토되어지고, 그 외에도 현장에 적합하고 투명한 입법환경 조성을 위한 각종 방안들이 국민입장에서 많이 논의되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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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제처 블로그지기 새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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