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 패러다임의 전환

 

이강섭(법제처 법령정보정책관)



법제도는 사회현상을 뒤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어떤 유형의 사건이 발생한 후에야 그 현상에 대한 규제 또는 지원에 관한 법제의 필요성이 검토되고 실제 입법에 착수하게 된다는 말일 수도 있고, 법제가 사회현상을 예단하여 미리 만들어 두는 것이 어렵거나 불합리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말일 수도 있다. 법제도를 만드는 첨병인 법제처의 직원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가의 말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일반 부처에서 만들어 온 법령안을 사후에 심사하는 데에는 익숙하나, 선제적으로 사전에 어떤 일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데에는 서투르다는 평가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는 일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 바뀌는 것인지, 그 일에 맞는 성격의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인지 구별하기는 어렵지만, 법제처는 정부 수립 후 60여 성상 동안 이러한 외부의 평판에 어긋나는(?) 패턴을 보여준 적은 별로 없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제 그러한 법제처도 세상의 변화에 맞춰(이것도 수동적이라 할까?) 그 자신의 업무 패러다임을 변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이제는 능동적으로 법제 서비스기관으로 변신하고 있다. 즉 법제처가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려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법제처가 지금까지 소극적인 업무만 해왔다는 뜻은 아니다. 법제처는 법령심사 시에도 법령심사의 직접 고객은 정부부처의 공무원이지만, 법령심사의 실질적 고객은 일반 국민이라는 시각에서 심사업무를 해왔으며, 적극적으로 국민이 불편해 하는 사항을 발굴하고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즉 일반 국민들이 한자교육을 깊이 받지 못한 현실을 무겁게 여기는 인식 하에, 우리 고유의 우수한 문자인 한글전용으로 법령을 표기하고, 어려운 한자어, 일본어투의 문장 등을 쉽게 풀이하여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 법령 표현을 맞추기 위하여 시작한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 국민에게 불필요한 규제를 개선하기 위한 국민불편법령 개폐사업, 나아가서는 미래의 법령 환경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규제제도를 원칙금지에서 원칙허용으로 변경하는 등의 법제선진화 사업 등 최근에는 법제처가 법제를 변경하기 위하여 능동적·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업무가 많이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능동적인 사업도 사실은 현상에서 나타난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며, 미래의 어떤 모습을 그리고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사업은 아니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오늘 이 글에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야말로 미래를 그려가는 사업에 관한 것이다.

법제처는 지난 8월 26일자로 법제교류협력과를 신설하여 국제적 법제교류협력사업을 본격화하기 시작하였다. 그 핵심은 바로 미래를 미리 그려보고 이에 맞춰 교류협력 등을 통하여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법제교류협력과의 주요업무 중 하나로 개발도상국 법제지원이 있다. 법제처 차원에서는 아직 수요도 없고, 지금까지 해본 적도 없는 개발도상국 법제도 정비지원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어떤 사업을 추진할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수요가 있어야 하겠지만, 아직 아무런 수요도 없는 (것으로 보이는) 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일견 무모해 보일 수도 있지만, 큰 미래를 볼 경우 그대로 수동적으로 수요가 생길 때만 기다릴 수는 없다. 현재 수요가 없는 법제 수출을 추진하기 위하여 법제처는 우선 우리 법제경험을 정리한 대한민국 경제법제 60년사를 편찬한다. 대한민국 경제법제 60년사는 일본의 식민지지배와 6.25 동족상잔의 폐허 위에서 건국 후 6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고, 이제는 G20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을 있게 한 역사를 경제법제의 관점에서 기술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대한민국의 성공사례를 소개하고, 이를 통하여 우리법제의 우수성을 알리고 개도국에 대한 법제도 정비지원사업의 기초자료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자료를 검토해 본 개도국에서 우리나라의 우수한 제도의 도입을 요청하게 되면 본격적으로 법제도 정비지원사업을 추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업을 보다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법제처는 아시아법제포럼이라는 중요한 회의체의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그 첫 회의가 오는 11월 10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개최된다. 법제처는 첫 회의지만 다양하고 알찬 준비로 그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하고 있다.

회의 주제는 아시아 각국 법제의 공동 발전을 통한 아시아의 공존과 번영이다. 즉, 회의는 법제도 정비지원사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회의체의 본연의 목적인 공동의 이익 즉 공존과 공영을 추구하는 것이다. 법제도 정비지원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회의에서는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의 법제경험의 교류공유를 통하여 우리 법제의 개선에도 도움을 받자는 것이다. 일본, 중국도 그 멤버이고, 전통적인 고유한 법제를 많이 갖고 있는 나라도 있기 때문에 아시아법제포럼에서 우리나라가 일방적인 시혜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도 안 될 것이기에 공존공영을 주제로 하면서 그 안에서 우리의 법제도 정비지원사업의 성공 가능성도 살펴보려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 하에 진행될 첫 번째 의제는 우선 법제처 주요업무 소개이다. 중국, 일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행정부의 법제업무는 법무부의 소관이다. 그 때문에 초청대상국의 관계기관은 대부분 법무부이다. 법제처는 행정부 법제기구의 기본적인 업무인 법령심사와 법령해석 외에 정부입법계획의 총괄조정, 법제도 선진화를 위한 적극적인 법령개폐작업의 추진, 전 국민에게 다양한 법령정보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법령정보서비스, 외국의 법령을 적극적으로 수집연구하여 일반 국민에게 제공하는 세계법제정보서비스 등 중국의 법제판공실, 일본의 내각법제국과 비교하여도 그 독특한 성격이 드러나는 업무를 많이 추진하고 있다. 첫 번째 의제는 이러한 법제처의 특징적인 업무를 참가대상 아시아 각국에 소개하는 것이다.

두 번째 의제는 법제경험과 법제정보교류이다. 아시아 각국의 공동발전을 위하여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상호간의 법제정보와 경험의 공유를 두 번째 의제로 내세운 것이다. 이 의제를 통하여 각국의 특별한 법제경험을 전파하고, 상호간의 법제정보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과 성과를 보고하게 된다.

세 번째 의제는 경제발전과 법제로서 위에서 언급한 대한민국 경제법제 60년사 및, 기획재정부의 주관으로 KDI를 파트너로 하여 범정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지식공유사업(Knowledge Sharing Program, KSP)을 소개하며, 일본의 개도국에 대한 법정비지원사업의 사례를 소개한다. 우리나라의 법제도 정비지원사업의 추진의지를 보여주는 의제이며, 일본의 사례 소개는 앞으로 우리가 나갈 방향검토에 도움이 될 또 하나의 자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네 번째 의제는 참가국의 법제업무 소개이다. 이는 각국의 서로 다른 법제업무 수행방법을 소개하고 상호간의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의제이다.

다섯 번째 의제는 코뮤니케(Communiqué)로서 이 회의체의 지속과 발전을 위한 공동선언으로서 법령정보 교환 네트워크 구성문제, 향후 아시아법제포럼의 운영방식에 대한 공동의 이해관계를 담은 선언문을 채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전문적인 의제를 다루는 분과회의를 마련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도시개발법제로서 국토해양부, 건국대학교 등의 지원을 받아 아시아 각국의 도시민을 위한 주택공급법제의 현황 검토 및 교류가능성을 모색한다. 여기서는 중국, 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사례를 발표하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공동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기회로 활용하려고 한다.

두 번째의 분과회의는 녹색법제로서 아시아 각국의 녹색성장법제 현황의 공유 및 교류를 통한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최근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배출권 거래제와 관련하여 그 도입현황과 과제에 대하여 토의하고 공동의 관심사에 대한 공동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세 번째 분과회의는 재난방지법제로서 기후변화에 따라 점점 심각해지는 자연재해, 원자력과 같은 고위험도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파괴적 재난 위험성의 증대에 따른 공동대처의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아시아 각국의 재난방지 관련 법제의 현황에 대하여 발표하고 재난방지에 대한 국제공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끝으로 아시아법제포럼에서는 참가국 간의 문화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홍보하는 목적을 겸하여 전통예술공연과 참여 외국인들이 호감을 가질 만한 문화예술 관련 현지시찰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포럼은 그 목적이 아시아 각국의 법제정보에 대한 접근통로를 제공하고, 우리 법제의 소개 및 전파 등을 통하여 글로벌 스탠다드 형성을 주도하며, 범정부적으로 추진 중인 KSP사업에 대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목적에 맞게 중국 법제판공실 주임, 일본 내각법제국 차관, 필리핀캄보디아카자흐스탄 등 10여개 국가의 장차관을 초청하고, 이분들을 포함하여 아시아 각국의 법제담당자 50여명이 참석하는 등 국내외의 4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또한 국무총리께서도 이 포럼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축사를 할 예정며, 국회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기획재정부외교통상부행정안전부법무부노동부의 장차관도 참석할 계획이다.

또한 이번 회의가 제1회 회의지만 단순한 현황 소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시개발법제, 녹색법제, 재난방지법제 등 전문전인 분야에 대한 분과회의도 준비하고 있어 정부기관 외에 전문연구기관의 연구자, 대학 교수 등의 전문가들도 다수 참석할 예정이다. 그리고 회의는 기본적으로 영어로 진행하지만, 회의내용의 정확한 이해와 수준 높은 토론을 돕기 위하여 한영 동시통역도 준비되어 있다.

법제처가 발족한 후 60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하였던 대규모 국제행사를 준비하면서 법제처의 직원들은 매일매일 새롭게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의전문제를 비롯하여 우려가 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법제처장의 적극적인 업무추진과 직원들의 열정으로 하나씩 해결하면서 착실하게 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이번 본회의를 준비하는 회의로 지난 5월 4일에 개최한 연락관 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경험도 이번 회의 준비에 있어서 매우 귀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처음으로 준비하는 대규모 국제회의가 낯설고 어렵지만,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나면, 분명히 법제처로서는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더욱이 이를 통하여 그간 법제처에 대한 대내외적인 시각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변화시키는 법제 패러다임의 전환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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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법제처 블로그지기 새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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